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수학능력시험/탐구 영역/윤리와 사상 (문단 편집)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20학년도]] ==== * '''6월 모의평가''' 같은 윤리과 과목인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생활과 윤리|생활과 윤리]]처럼 윤사에서도 벤 다이어그램으로 자주 나오던 문제의 그림을 각자의 주장을 비판하는 형태의 그림으로 바꾸어서 출제했으며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여럿 출제되었다. [[EBSi]]에서 집계된 결과를 기준으로 가장 높은 오답률을 차지한 문제는 특이하게도 기존에 킬러 문항으로 자주 출제되었던 단원이 아닌 자유주의에 관한 제시문이었다.[* 제시문의 내용은 [[존 롤스|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다룬 내용이었지만 굳이 사상가를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차이점을 생각하면서 독해할 수 있었다면 차분하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고 높은 오답률을 차지한 문제들은 양지에 대한 주희와 왕수인의 견해, 정약용의 사상을 통해 조선시대 성리학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기독교 철학을 비교하는 내용 등이 있었으며, 1등급컷은 47점으로 확정되었다. ----- * '''9월 모의평가''' 1컷은 48점으로, 전체적으로 보자면 기출과 연계교재에 나온 문제들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실제 수능 당일날 이 문제가 나왔다면 여지없이 1등급컷 50점이다. * 15번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비교하는 문제로, 이 문제가 1등급컷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악이 실체인가 아닌가, 신앙이 이성의 기능 수행에 기여하는가''', 이 두 질문에 알맞게 대답할 실력이 있으면 맞힐 수 있는 문제였다. 사실 이 내용은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에 '''그대로 나온''' 내용이었다. 출제진도 이것을 고려하여 2점을 부여한 듯 하지만, 오답률이 50%를 넘어가 버렸다. * 18번 오답률이 두 번째로 높은 문제다. 결정적인 오답률 상승 선지는 1번으로, 소유 권리의 정당성을 판단하는데 역사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하느냐였다. 기출과 연계교재에도 나왔지만, 출제빈도가 적어서 당황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지가 너무 명확해서 소거법으로도 풀 수 있었다. 이 문제 역시 2점이었다. * 5번 스피노자와 스토아를 비교한 문제로, 문제를 똑바로 안 읽고 제시문부터 봤다면 을이 누군지 찾아내 힘들었을 것이다. * 6번 맹자의 구방심을 몰랐다면 갑이 공자인지 맹자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라도 풀 수 있을 만큼 쉬웠다. * 7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한 문제였다. ㄱ과 ㄴ선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쉽지만, 공부를 너무 많이 한 학생은 쓸데없는 논리에 빠져 고생했을 수도 있다. * 8번 이이와 이황이 나오는 전형적인 문제이지만, 이번엔 사단과 칠정이 아닌 성과 정을 구체적으로 묻는 문제였다. 하지만 어렵게 내진 않았다. * 10번 정말 오랜만에 평가원 기출에서 의천이 나왔다. 선지는 전부 기출에 나왔던 선지다. * 14번 특이한 문제로 혜능과 왕수인을 비교했다. 이는 오래전 기출문제에 한번 나왔던 유형으로, 결국 출제의도는 '''이론적 학습의 불필요'''가 혜능과 왕수인의 공통점이냐 아니냐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가였다. * 19번 6월 모고 때 나온, 새로운 형태의 비교문제로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한꺼번에 비교했다. ----- * '''대학수학능력시험''' '''2019학년도 수능보다 더 쉽게 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red 2점짜리 1문제만 틀려도 바로 3등급}}}인 대참사가 발생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생활과 윤리|생활과 윤리]]가 이번 수능에서 꽤나 어렵게 나왔다고 평가 받는 것에 비해 윤리와 사상은 비교적 평이하게 나왔다. 각 입시 사이트에서는 1~3등급까지의 등급컷을 50-48-45로 관측하고 있었으나, 만점자 비율이 무려 '''14.88%'''가 나와서 만점자 백분위는 93이 나왔고, 세계사와 함께 2등급 블랭크가 일어나고 말았다. --세계사는 그래도 1등급 컷이 47점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3등급컷은 무려 '''46-47점 표준점수 증발된 46점'''으로 3점짜리 1문제 틀리면 바로 3등급컷인 표준점수 60, 백분위 78이 나온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거냐면 똑같이 2등급 블랭크가 발생한 2년 전 수능의 경제가 만점 백분위 94, 47점 백분위 82, 45점 백분위 77(3등급컷)이었는데 18수능 경제는 3점짜리 1문제 틀려도 그나마 3등급 중반은 나오지만 20수능 윤사는 3점짜리 1문제만 틀려도 바로 3등급컷으로 떨어질 정도라는 것.] * 1번 [[임마누엘 칸트|칸트]]의 의무론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제시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큰 감탄과 존경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안(또는 나의 내면)에 있는 이성적 도덕 법칙이다.'라는 칸트의 유명한 말을 수록하였다. 4번 선지의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려고 노력한다.'는 주로 생활과 윤리에서 물어보는 '인간중심주의'와 관련된 선지이지만, 이번에는 윤사에서도 칸트의 목적 대우 범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칸트는 인간중심주의자로서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해야 할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고 보았다. * 2번 순자와 맹자의 사상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ㄷ 선지의 '군자와 소인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같지 않다.'에 대한 시비 판별이 이 문제의 핵심적인 내용인데, 기본적으로 순자는 성악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둘 다 군자와 소인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서로 똑같다고 주장한다. (순자는 성악설이므로 전부 다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맹자는 성선설이므로 전부 다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남.) 흔히 윤리와 사상을 처음 공부할 때는 보통 맹자와 순자의 차이점에 대해서 주로 집중적으로 공부하지만, 선진 유학 파트를 완벽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맹자와 순자의 공통점(군자와 소인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같다, 누구나 수양을 통해 군자가 될 수 있다. 등)과 공자와 맹자의 차이점(교육과정 상에서 공자는 역성 혁명을 주장하지 않았다, 공자는 맹자가 말한 '사덕', '사단', '양지', '양능' 등의 개념을 교육과정 상에서 주장한 적이 없다. 등)을 추가로 알아 두어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심화된 문제까지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 3번 롤스와 노직의 사회사상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3번 선지에서 물어보는 노직의 '역사성의 원리'는 2020학년도 9월 모평에서 선지로 제시했던 내용이었다. '생활과 윤리'와 '윤리와 사상' 두 과목을 동시에 공부하는 수험생이 있다면, 노직의 '역사성의 원리'와 이 문제에서 출제되지는 않았지만 2019학년도 수능에서 출제되었던, '공정한 규칙 또는 절차가 있는 상황에서의 포커 게임'에 비유되는 롤스의 '순수 절차적 정의' (조금 덧붙이면 '공리주의'와 '형사 재판', '실정법 제정'에 비유되는 '불완전 절차적 정의'와 이른바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남은 조각을 가지고 가는 케이크 자르기'에 비유되는 '완전 절차적 정의'까지) 에 대한 개념이 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교과 단원이 겹치기 때문에 생윤과 윤사 양쪽에서 다 출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면 사회 정의 파트를 꼼꼼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4번 근대 신흥 종교 중 원불교와 동학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원불교에서 주창한 '영육쌍전'에 따라 1,2번 선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동학은 사인여천, 시천주 등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한울님'이 계심을 주장하였으므로 마음 속에 한울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3번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4번 선지에서 제시한 천지공사를 통한 원한의 해소(해원상생)는 원불교와 동학이 아닌 증산교 만의 고유한 특징이므로 동학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5번 선지가 헷갈릴 수 있을 법한 선지인데, 원불교와 동학이 한국의 고유 사상과 유교, 불교, 그리고 도가 사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은 맞지만 이러한 종교들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므로 5번 선지가 틀림을 알 수 있다. * 5번 스토아 학파와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스토아 학파의 학자들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에 따르고 자기 내면의 정념들을 극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므로(단, 자연스러운 정념의 발생은 인정함.) 1번 선지의 필연성을 벗어남과 2번 선지의 정념을 따름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에 대한 실존적 만남을 바탕으로 신을 적극적으로 믿을 것과, 신과의 합일을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신의 은총을 통한 인간의 구원을 강조한 사상가이므로 4번 선지의 '이성적 인식을 통한 지복의 획득'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인식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완전한 행복의 획득에 있어서는 신에 대한 이성적 인식을 넘어서는 '인격신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스토아 학파의 학자들은 신과 자연과 인간 본성의 동일성에 대한 이성적 인식을 통해 행복을 얻을 것을 강조했으므로 5번 선지에서 스토아 학파가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 6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이번 문제에서 특이하게 볼만한 점은 바로 플라톤의 4주덕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물어봤다는 점인데, 이는 1번 선지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번 선지에서 제시한 '전체를 위한 유익함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이성의 덕인 '지혜'이다. 플라톤은 통치자 계층은 '지혜+용기+절제'의 덕이 필요하고, 방위자 계층은 '용기+절제'의 덕이 필요하고, 생산자 계층은 '절제'의 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이 세 계층의 덕이 조화로움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의'의 덕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또한 교육과정 상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이론을 이어받아 '지덕복 합일설'을 따른다고 간주된다. 따라서 2번 선지에서 덕을 갖추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플라톤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덕과 연관지어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이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에서 '지성적 덕'(철학적 지혜 + 실천적 지혜), 이성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욕구에 관련된 부분에서 '품성적 덕'(중용 등), 마지막으로 이성과 연관이 없는 기본적인 욕구에 관련된 부분(이 부분에는 덕이 없고,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이 관련된다.)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품성적 덕인 중용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이성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욕구의 부분을 다스려줄 수 있는 이성이 필요한데, 그 이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덕 중에 하나가 '실천적 지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번 선지가 옳은 선지임을 알 수 있다. * 7번 마르크스와 왈처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분업을 부정하였으므로 1번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3번 선지에서 제시한 '영역 간 자유로운 가치의 전환'이 바로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왈처의 '전제'와 관련된 개념이다. 왈처는 전제 철폐를 주장했으므로 3번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왈처는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지 않았으므로 5번 선지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장했다. 조금 더 지엽적인 개념까지 건드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인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사유 재산이 아직 존재하고, 그에 따라 계급과 국가도 아직 존재한다. 이런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진행되는데, 여기서 깊게 건드리면 사회주의 단계에서의 분배 방식에 대한 제시문이나 선지를 만들 수도 있는데,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능력에 따른 분배 방식에 따라 사회적 자원들을 분배한다. 사회주의 단계는 아직 사유 재산과 국가 등이 남아 있는 불완전한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에 따른 분배 방식이 마르크스가 역설한 이상 사회인 '공산 사회'로 넘어갔을 때 완전한 '필요에 따른 분배' 방식으로 바뀌어서 분배가 진행되는 것이다. 굳이 '사회주의 단계(과도기)'라고 딱 특정지어서 문제를 제시하거나 언급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문제 풀이에 있어서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분배를 공산 사회에서의 방식인 '필요에 따른 분배' 방식으로 풀면 된다. * 8번 베이컨과 듀이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ㄱ 선지의 '우상 타파를 위한 최선의 탐구 방법'은 이른바 '꿀벌의 방식'이다. 베이컨은 관념적인 추론 등을 통한 연역법은 '거미의 방식'과 같고, 실용적인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관찰 결과와 데이터 만을 수집하는 단순 귀납법은 '개미의 방식'과 같다고 말했다. 베이컨이 본 '참된 귀납법'은 '꿀벌의 방식'으로 꽃가루를 소화한 뒤 벌꿀과 벌집을 만들어내는 꿀벌과 같이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것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시켜서 실용적인 방향으로의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참된 귀납법'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베이컨은 이러한 '참된 귀납법'의 과정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였다. 덧붙이자면 대표적인 경험주의 사상가로 분류되는 베이컨이 '추론의 과정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인정했는가? 안 했는가?'라는 질문이 앞으로 다시 출제되었을 때 방심하고 보면 낚일 위험이 있는 선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 9번 한국 유교 사상 중 율곡 이이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제시문에 나온 '선생님'은 칠정이 사단을 겸한다는 점에서 '율곡 이이'임을 알 수 있다. 이이의 '경'에 관한 내용은 2020학년도 9월 모평에서 한번 출제된 바 있다. * 10번 흄과 벤담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ㄴ 선지의 '도덕은 공감의 원리에 따른 승인과 부인의 감정에 기초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렇다고 말할 입장은 교육과정 상 흄으로 대표되는 '주정주의' 사상이다. 벤담을 위시한 공리주의 사상가들은 도덕은 '공리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지, '승인과 부인의 감정'에 따라 도덕적 가치가 구별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에 관한 문제는 이미 2019학년도 6, 9월 모의평가에서 출제된 바 있다. ㄷ 선지의 '덕과 부덕은 이성이 아니라 도덕감에 의해 구별되는가?'에 대해 흄은 옳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주정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다만, 흄에 따르면 도덕적 선악 및 시비 판별이 감정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의 역할이 아예 없다든가 이성과 감정이 항상 상충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선지이다. 먼저, 흄은 도덕적 추론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였다. 어떠한 행위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에 대한 판별은 감정에 기초하지만, 구체적인 도덕 실행 방식은 이성적 추론을 통해서 도출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따라 이성과 감정이 항상 상충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길가에 심장 마비로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생각해보자. 심장 마비로 쓰러진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라는 것은 우리의 '동정심'이나 '공감'과 같은 감정에 기초하여 판별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그렇다면 심장 마비로 쓰러진 그 사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119를 부르자.', '전기 제세동기를 갖고 오자.', '주변 사람에게 일단 도움부터 청하자.'등 여러 가지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이성과 도덕은 항상 상충하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 11번 원효와 지눌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챙겨둘 개념으로 원효의 '일심이문'과 지눌이 '돈오점수'를 주장했고, 그 중 '점수'의 방법으로 '정혜쌍수'를 주장했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정과 혜를 함께 수련한다는 것'이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원시 불교의 입장으로도 해석될 여지(원시 불교 시대의 석가모니가 계-정-혜(다른 말로 계율-선정-지혜)의 삼학을 함께 수련할 것을 주장하였다. 구체적으로 계(계율)는 몸과 입과 뜻으로 범하는 나쁜 일을 삼가라는 것이요 정(선정)은 마음의 산란함을 일경에 머물게 하라는 것이며 혜(지혜)는 미혹과 무명에서 벗어나서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다.)가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수월하게 불교 파트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지에서는 3번 선지의 '내 마음이 부처임을 자각하면 더 이상의 수행은 필요 없다'가 지눌이 아닌 혜능(중국 선종)의 의견이기 때문에 틀린 선지이다. 4번 선지에 나온 지눌의 '혜는 정을 떠나지 않고 정은 혜를 떠나지 않는다'라는 문구는 나중에 제시문에서 그대로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향후 수능에서 윤리와 사상을 볼 생각이라면 그냥 가볍게 외워두는 편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 12번 노자와 장자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1번 선지의 '성인은 물처럼 낮은 곳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다.'는 노자가 주장했던 '상선약수'와 '겸허', '부쟁'의 개념을 가져다가 선지로 만든 것이다. 2번 선지의 '사람들이 공적을 쌓아 널리 이름을 떨치도록 돕는다.'는 기출 선지 중 '도가는 현자를 숭상하는 사회를 부정한다.'와 연결되는 선지이다. 공적을 쌓아 널리 이름을 떨치는 것은 유교에서 주로 주장했던 효의 완성인 '입신양명'에 대한 설명인데, 도가는 인위적인 도덕을 통해 출세하는 것을 부정하였으므로 2번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3번 선지의 '도의 관점에서 사물의 시비와 선악을 명확하게 분별한다.'는 도가에서 보는 '사물의 관점'과 '도의 관점'에 대한 개념을 가져다가 선지로 만든 것이다. 도가 사상가들은 '사물의 관점에서 만물을 바라보면 시비,선악,미추,존귀 등 일체의 구별이 생기고, 도의 관점에서 만물을 바라보면 그러한 일체의 구별이 소멸하고 자연적 본성인 도에 따라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으므로 3번 선지가 틀렸음을, 또한 자연적 본성을 가진 만물을 평등하게 대우하므로 4번 선지 또한 틀렸음을 알 수 있다. 5번 선지에서는 도가 사상가들이 '예'를 활용한 통치를 긍정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인데, 도가 사상가들은 무위의 통치(무위지치)를 강조했지, '도덕'과 '예'를 통한 통치를 주장하지 않았으므로 5번 선지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도가에서 보는 '도'와 '덕'과 '도덕'은 엄밀히 구분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도가는 '도'와 '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만, '도덕'에 대해서는 인위적인 산물, 인의에 관한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노자의 대표 저서인 '도덕경'도 '도덕/경'이 아니라 '도/덕 + 경(경전)'이다. 덧붙이자면 유교, 불교, 도교 사상가들이 바라보는 '도'에 대한 해석은 중의적인 면이 있으므로 사상가의 범주를 정확하게 짚어내어 예리하게 구별해야 한다. 유교 사상가들이 볼 때 '도'는 인의 정신을 실현하는 '도덕'이며, 불교 사상가들이 보는 '도'는 '중도' 내지 '8정도'에 해당하고, 도가 사상가들이 보는 '도'는 형태가 없지만 '되돌아감(반)'이라는 작용이 있는 자연 만물의 본성 '도'라고 해석한다. * 13번 케인즈로 대표되는 수정 자본주의와, 민주 사회주의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ㄱ 선지에 대해 케인즈가 볼 때 실업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 실패'이고 이를 타개할 해결책이 '유효 수요의 창출'이므로 ㄱ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ㄷ 선지에 관해 덧붙이자면 민주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계획 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과학적 사회주의로도 불리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주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차이점인 '사유 재산의 인정'에 관해 추가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전면적 공유제와 전면적 계획 경제 만의 운용을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민주 사회주의는 기본적인 틀은 공유제 및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로 하되, 몇몇 부문에 대해서 시장 경제 도입과 사유 재산 제도를 일부 인정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 14번 에피쿠로스와 소크라테스에 관한 내용으로 출제되었다. ㄱ 선지에 대해서 에피쿠로스는 욕구를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욕구(식욕, 수면욕 등)', '자연적이면서 비필수적인 욕구', '비자연적이면서 비필수적인 욕구' 등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 중 에피쿠로스는 '자연적이지 않거나 또는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비필수적인' 욕구들을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 것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자연적이지 않은 욕구를 추구하면 불안이 생길 수 있다(에피쿠로스가 얘기한 아타락시아가 '몸과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이므로 여기에서 착안해 불안이란 용어를 선지에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ㄱ 선지는 옳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ㄴ 선지는 '지혜를 갖추어도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인데, 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주장했던 지덕복 합일설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주의 겸 주지주의 사상가로서 '알면 실천할 수 밖에 없다. 아는데 실천하지 않을 순 없는 것이며 악덕을 저지르거나 덕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진실되게 모르기(=무지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진실로 지혜를 갖추었다면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사람은 당연히 고의적으로 악을 행할 수가 절대로 없기 때문에 ㄴ 선지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덕복 합일에 따라 덕과 복을 갖추기 위해서 지(=앎)가 꼭 필요하므로 ㄷ 선지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ㄹ 선지에서 눈여겨 볼 점은 쾌락주의 사상가(더 넓게 보면 경험주의 사상가 계보에도 포함)로 대표되는 에피쿠로스(또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행복 추구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인정했다는 점을 평가원에서 선지에 제시했다는 점이다. 베이컨, 홉스, 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추론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도'''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에 한 번쯤 기억해둘 만하다. * 15번 14번과 함께 출제된 합답형 문제로, 15번 문제에서는 공리주의 사상가 밀과 관련된 내용이 출제되었다. 밀은 '두 가지 쾌락을 잘 아는 사람들이 어느 한 쪽의 쾌락을 높이 평가해서 다른 쪽의 쾌락에 비해 그 양이 적을 지라도 선택한다면, 그 쾌락은 질적으로 훨씬 우월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벤담의 철학을 원용하여 '질적 공리주의'를 새로이 제시한 공리주의 사상가이다. 하지만 벤담이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하여 '돼지의 철학'을 주장하는 사상가라고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밀은 상술한 문구 중 '두 가지 쾌락을 잘 아는 사람들'이 '양쪽 쾌락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들'이자 다시 말해 '엘리트(Elite)'를 나타내는 것(=엘리트 들에 의한 도덕 기준 정립)이기 때문에 엘리트주의자라고 비판 받았던 측면도 가지고 있었던 사상가이다. 14번 문제의 제시문 갑에 나타난 '에피쿠로스'와 15번 문제의 제시문에 나타난 '밀' 두 명이 모두 부정할 선지를 고르면 되는데, 1번 선지는 에피쿠로스가 긍정할 내용이라서 안 된다. 에피쿠로스는 공직 자리를 회피하고 작은 공동체에서 우정을 나누면서 소극적 쾌락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3번 선지는 사회적 차원의 쾌락 증진을 주장했던 밀이 긍정할 내용이라서 안 된다. 에피쿠로스와 밀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쾌락의 차원'인데, 에피쿠로스는 '개인적 차원'의 쾌락을 중시하였고 반면에 밀은(참고로 벤담도) '사회적 차원'의 쾌락을 중시하였다. 4번 선지의 '더 좋은 결과를 보장한다면 고통은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는 에피쿠로스가 긍정할 내용이기 때문에 안 된다. 에피쿠로스는 당장의 작은 쾌락보다 향후 '''확실하게 얻게 될''' (쾌락이 발생할 확고부동한 가능성이 핵심적인 고려 기준이다.) 더 크고 좋은 쾌락을 위해서 지금 당장의 작은 고통은 감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5번 선지도 에피쿠로스가 긍정할 내용이기 때문에 안 된다. 2번 선지에 대해서 에피쿠로스도, 밀도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않는 자기 희생'은 선이 아니라 그냥 목숨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바라 봤기 때문에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않는 자기 희생 역시 선이다.'라고 주장하는 2번 선지는 에피쿠로스와 밀이 모두 부정할 선지라고 볼 수 있다. * 16번 원시 불교에 관한 내용이 출제되었다. '불변의 실체'로서의 '나'가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원시 불교 문제의 단골 출제 주제이기 때문에 무난한 문제였다. * 17번 사르트르와 스피노자에 관한 내용이 출제되었다. 실존주의 사상가 중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키르케고르와 야스퍼스가 있고,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사르트르와 하이데거가 있다. 처음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키르케고르(심미적 단계-윤리적 단계-종교적 단계의 3단계를 제시하며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신에게 귀의하여 최종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이르기로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주체적인 결단 강조,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문구로 유명)와 사르트르('인간은 내던져진 존재,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라는 문구로 유명)의 분류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야스퍼스('객관적 사실로서의 죽음 그 자체는 한계 상황이 아니며 또한 동물에게 있어서의 죽음도 역시 한계 상황이 아니다' 및 '인간이 죽음의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자신과 연결 지어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시작되는 '한계 상황'으로서의 죽음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일종의 암호와 같은 것'이라는 문구로 유명)와 하이데거('현존재(Dasein)'이란 개념으로 유명.)의 분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수능 문제를 분석하면서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문제의 발문에 따라 사르트르가 스피노자에게 할 수 있는 비판은 2번 선지의 '인간은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음을 모르고 있다.'이다. 스피노자는 신 또는 자연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정념을 극복하여 마음의 초연한 상태를 유지하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유' 그 자체는 인정하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는 부정한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는 요소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스피노자와 스토아 학파의 출제 요소이기 때문에(스피노자는 자유 인정/자유의지 부정, 스토아 학파는 자유 인정/자유의지 인정) 꼭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 18번 제시문의 갑 사상가는 [[정약용]], 을 사상가는 [[주자(철학자)|주희]]이다. 기존의 기출 선지와는 다르게 어느 국가의 사상가인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해주지 않았던지라 갑 사상가를 맹자로 착각한 수험생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갑 사상가를 맹자로 착각했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오답 선지가 2번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문제였다. EBSi 기준 오답률 1위. * 19번 사회계약론자들의 사상을 비교하는 문제. 올해 모의평가에서 신유형으로 나타났던 사상가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 문제였다. EBSi 기준 오답률 2위. * 20번 나딩스와 칸트(또는 칸트를 포함한 정의 윤리 자체)에 관한 내용이 출제되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나딩스'고, 편지를 받는 사람인 '선생님'은 '칸트'이다. 나딩스의 입장에서 볼 때 칸트의 입장에 대해 할 말을 찾으면 되는 문제였다. 1번 선지의 '동정심과 같은 감정을 의무의 근거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다.'에 대해서는, 칸트가 감정과 같은 자연적 경향성을 도덕 법칙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틀린 선지이다. 2번 선지의 '도덕 법칙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에 대해서는, 칸트가 이 내용을 오히려 주장하면 주장했지 간과하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틀린 선지이다. 3번 선지의 '배려에 대한 의무가 자연적 배려의 경험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행하는 '자연적 배려'가 의무 의식에 따라 행하는 '윤리적 배려'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나딩스가 할 얘기이기 때문에 틀린 선지이다. 4번 선지의 '도덕 교육의 과제가 이성적 추론 능력의 함양임을 간과한다.'에 대해서는, 칸트가 도덕 법칙의 원형이 되는 정언 명령 자체를 '인간 이성의 명령'이라 표현할 정도로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 했고, 또한 이성을 가지지 못한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해서는 언제나 항상 목적으로 대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인간중심주의자'였기 때문에 칸트가 이성과 관련된 부분을 간과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4번 선지도 틀린 선지이다. 마지막 5번 선지는 '인간 관계의 특수한 맥락에 따른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됨을 간과한다'인데, 나딩스를 비롯한 배려윤리 학자들은 행위와 관련된 행위자의 성품, 행위자의 덕성, 행위자의 행동을 둘러 싼 상황 맥락 등을 중시했으므로 이것은 나딩스가 주장할 내용이 맞고, 또한 칸트는 도덕적 판단 기준에 있어서 정언 명령 및 이성 법칙에 따르라 했으며 상황 맥락 등은 배제하라고 했기 때문에(예를 들어 칸트의 입장에서 볼 때 선의의 거짓말은 비록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기저에 깔리게 된 '상황적인 맥락(예를 들면 독립운동가의 탈출 돕기 등)'이 있다 할지라도 '거짓말'이라는 준칙에 관련된 요소 자체가 언제나 항상 모든 상황에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상황에서도) 보편화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칸트는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상황 맥락을 배제한 상태로 판단하라고 주장했다.) 칸트의 입장에서 간과하고 있는 내용도 맞다. 따라서 5번 선택지가 적절한 정답이라고 볼 수 있다. 항상 단골로 출제되는 덕 윤리 및 배려 윤리(여기에 조금 더 확장하면 실존주의 윤리까지도) 및 근대 윤리(정의 윤리 등)의 비교 주제였기 때문에 '간과', '강조'를 보고 헷갈리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평소에 기출 문제를 분석하면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앞으로 있을 실전에서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